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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유정 종의 기원 리뷰

by 보물창고 주인 2023. 5. 29.

종의 기원 도서 이미지

 

종의 기원 / 정유정 / 은행나무


종의 기원 줄거리와 감상평


소설은 사이코패스중 1%상위 포식자라 진단받은 유진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엄마를 죽였을때는 망각을, 이모를 죽였을때는 자기합리화를 .. 그렇게 그의 살인에는 이유가 있었다.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라면 유진은 승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복용하는 이유에 대해 유진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야

(중략)

포식자는 보통 사람과 세상을 읽는 법이 다르다고 했다.

두려움도 없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고 남과 공감하지도 못한다고 ..

그러면서도 남의 감정은 귀신처럼 읽고 이용하는 종족이라고 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했다.

 

p16  약물중독자들은 대부분 환상을 쫓느라 약을 먹는다. 내 경우는 반대다. 환상을 얻으려면 약을 끊어야 한다. 끊은 지 얼마 후면 마법의 시간이 열린다. 약물 부작용인 두통과 이명이 사라지고 오감이 내 젖꼭지도 딸 수 있을 만큼 예리해진다. 후각이 개같이 예민해진다.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돌아가고, 생각 대신 직관으로 세상을 읽어들인다. 내가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낀다. 인간이 만만해진다.

 

p206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망각을 택했으며, 내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하구언 길의 위험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스스로 공고했겠지

p232  ‘원한다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내게 하는지 나는 아이를 통해 깨닫는다. 아이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는다. 약을 거부하거나 몰래 뱉어버리는 짓도 하지 않는다. 새벽 5시 30분이면 스스로 일어나 수영장에 갈 준비를 한다. 새벽 훈련이 끝나면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고 학교로 간다. 공부와 운동, 두 가지를 병생시키면 스스로 지쳐 포기할 줄 알았건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내게 뇌전증이 입에 거품 물고 뒤집어져서 발작하는 병이냐고 물었던 작년 12월 어느 날부터 그랬다.

나는 질문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유진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약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것도, 어떻게 알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약국에 들어가 물어봤을 수도 있고, 인터넷을 검색했을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아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영장 안에서 거품 물고 뒤집어질까봐, 혹은 그로 인해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는 아이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차라리 오해하는 채로 지내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침묵이라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 아이가 어떤 답을 기대하고 물었는지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수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기대와 달리, 아이는 약과 약의 부작용까지 받아들였다. 약만 잘 먹으면 수영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아이가 탈진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혜원은 기왕에 그리된 거 오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했다. 아이를 제어할 핸들고 삼으라고 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투약 중단에 대한 강력한 제동 장치도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그게 옳은 걸까, 묻자 혜원은 그런 걸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p242  돌이켜보면 나는 약을 끊을 때 냄새의 습격을 받았다. 주로 비린내였다. 피비린내, 생선 비린내, 시궁창 비린내, 흙비린내. 물비린내, 나무 비린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수나 향로 냄새까지 죄다 비린내로 인식됐다. 지금껏 그것을 발작의 전구증세 혹은 경고성 환각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아니라는게 밝혀진 지금에 와선, 이 이상하고도 과도한 감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약을 끊으면, 본래의 내 몸 상태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익히 아는 바였다. 본질적인 상태에서 남과 다른 어떤 부분이 내 특성, 혹은 본성일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면 그리하여 삶에 특정한 영향을 끼친다면 영향력이 커져서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면.. 문젯거리가 되겠지. 이모가 약을 쓴 것 그 때문이었을까.?

 

p250 유진의 심장을 뛰게 하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 몰라 겁이 난다.

 

p264 여자의 가방을 들여다보는 건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문득 가방을 열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내 생애에 이모의 영혼이 지금처럼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어떤 눈을 가진 영혼이기에 일곱 살짜리가 그린 그림을 모친 살해의 암시로 읽을 수 있었는지, 어떤 입을 가진 영혼이기에 열 살 짜리 조카에게 포식자라는 선고를 내릴 수 있었는지, 어떤 낯짝을 가진 영혼이기에 한 인간의 삶을 치료라는 명분으로 조져좋을 수 있었는지, 어떤 심장을 가진 영혼이기에 포식자홈그라운드로 혈혈단신 쳐들어 올 수 있는지..

 

p378  도로는 한적하고 12월의 밤은 스슨하고 바다는 부옇게 젖어 있었다. 저 앞 흐릿한 안개 속에선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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